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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앤 그림과 만나기
우리 삶의 비타민_ 영화 한편 본문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
타임루프 물의 고전같은 영화이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영화 <이터널 선샤인>입니다.
(※ 타임루프 (Time Loop) :고리나 원처럼 끝과 끝이 연결되어 특정 시간대가 무한반복된다는 뜻의 '루프(Loop)'가 메인인 작품을 말한다. 줄여서 그냥 루프물이라고도 불린다. 흔히 주인공 및 주변인물들이 특정 시간대에 갇혀서 똑같은/비슷한 일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나온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2004년작 영화로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마크 러팔로, 일라이저 우드 등이 출연했습니다.
영화에서 나오듯이 이 영화의 원제는 알렉산더 포프의 시, 'Eloisa to Abelard'의 209번째 줄부터 나온 구절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무구한 마음의 영원한 햇빛)' 에서 인용했습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독특한 촬영 기법 외에도, 짐 캐리의 진지한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마스크>나 <트루먼쇼>같은 코미디물이 전공인줄 알앗던 짐 캐리의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조용한 반전 연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짐 캐리 특유의 코미디가 중간중간에 첨가되어 있습니다. <트루먼 쇼>를 통해 정극 연기도 가능함을 보였던 짐 캐리지만 '실연에 우는 남자' 연기를 할 수 있다고는 각본가인 찰리 카우프먼도 생각지 못했다고 합니다.
영화 촬영은 리허설 없이 즉흥적인 현장 촬영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었는데, 배우들은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찍을 수 있었다고 술회한 바 있습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보편적인 사랑과 그 후 고통을 그리며 호평을 받은 영화로, 마지막 엔딩까지 완벽했던 영화입니다.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고 삶이 불확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사랑해보겠다는 마음, 사랑에 다시 고통 받을지언정 사랑에 다시 빠져 보겠다는 그 마음, 끌리는 마음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게 사랑이고 고통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은 각각 커플마다 형태는 다르지만 비슷한 과정을 밟습니다. 사랑하고 권태가 오고 이별하거나 결혼해서 서로 맞추어 가며 편안하게 잘 살아가거나.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이 영화가 좋았던 것은 사랑을 낭만적으로만 그리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처음 보면 조금 난해합니다. 완전히 이해 하시려면 최소 두 번은 보셔야 이해가 되실 겁니다.
회사와 집밖에 모르던 조엘(짐 캐리 분)은 삶이 지루하고 우울하고 외로웠습니다. 그런 조엘이 회사로 출근하던 중 갑자기 충동적으로 몬탁행 열차를 잡아탑니다. 조엘은 기차 플랫폼에서 파란 머리의 여자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 분)을 마주치는데..
그런데 따분한 삶에서 누군가 자기를 꺼내주기를 바랐던 조엘에게 적극적이고 활기찬 클레멘타인이 말을 걸어주었습니다.
살다보면 이런 횡재도 있나 봅니다. 모르는 여인이 말을 먼저 걸어오고 사귀게 되다니..
그런 클레멘타인을 밀어내지 않고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밀해져 연인으로 발전합니다.
그렇게 성격부터 서로 다른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어김없이 단점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싸우게 됩니다. 화가 난 여자는 떠났고 발렌타인데이를 핑계 삼아 사과를 하러 간 조엘은 자신을 처음 본 사람 취급하는 클레멘타인을 보고 당황하고 이내 그녀가 고통스러워 조엘과의 사랑한 기억을 모조리 지웠음을 알게 됩니다.
조엘이 이별에 아파하며 우는 장면은 사랑을 잃고 아픈 남자를 잘 표현했습니다. 아프지만 자신을 어떻게 모조리 지울 수 있는지 화가 납니다. 충동적으로 자신을 지웠다는 생각에 더 화가 납니다.
조엘은 클레멘타인이 자신을 지웠듯이 자신도 기억을 지우기로 마음먹고 라쿠사라는 회사를 찾아갑니다. 그녀에 대한 기억을 따라 지도를 그리며 지워가는데 둘의 아름다웠던 추억인 꽁꽁 언 찰스강에 누워서 별을 보던 낭만적인 데이트의 순간을 지우려 할 때 조엘은 저항합니다.
“기억 지우기 싫다고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아무리 소리를 질러봐도 박사에게는 들리지 않습니다. 클레멘타인 손을 잡고 도망을 다니지만 노련한 라쿠나 회사 직원들에게 붙잡히고 맙니다.
조엘은 도망가는걸 포기하고 그 순간을 즐기기로 하고 그들이 처음 만났던 몬탁 해변에 주저앉습니다.
알고 보니 영화 첫 장면에서 둘은 처음 만난 게 아니었습니다. 조엘은 기분이 울적해 무작정 무단결근을 하고 몬톡행 열차를 탔습니다. 처음 보는 여자와 눈도 못 마주치는 소심한 조엘은 활발한 클레멘타인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언젠가 본 것 같은 느낌입니다. 기억은 지웠지만 마음에 각인된 것들일까.
조엘은 인생 자체가 심심했고 클레멘타인은 인생을 1초도 낭비하기 싫어서 누릴 거 다 누리고 싶어 하는 여자였고 어디로 튈지 모르고 항상 불안합니다.
그러다 두 사람은 알게 됩니다. 서로 사랑했던 사이였고 서로를 기억에서 지웠다는걸.. 그들은 라쿠사 직원 메리(커스틴 던스트 분)로 인해 왜 이별을 했는지까지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사랑했지만 단점들이 눈에 거슬렸고 상처를 줬습니다. 기억을 지운 이유로 클레멘타인은 조엘이 지루하고 함께 있을 때 자기 자신이 싫어진다고 고백했고 새 출발을 하고 싶었습니다. 조엘은 클레멘타인이 책이 아닌 잡지만 보고 똑똑하지만 교양이 없으며 어휘력이 딸리고 사람들 앞에서 창피할 때가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조엘은 지루한 자신의 일상에서 꺼내줄 것 같은 클레멘타인을 사랑했지만 충동적인 그녀의 안 좋은 모습들이 보인 것입니다.
클레멘타인은 자신은 완전하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는 망가진 여자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두 사람은 이제 과거를 다 알게 되었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 두려워집니다. 또 반복될테니깐 말입니다. 처음은 좋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면아래 내려앉아 보이지 않고 있던 단점은 부각될테니깐.
다시 사랑을 해보기로 한 두사람.
두 사람은 서로 싫어하는 걸 조심하고 맞춰가며 잘 살게 될까, 아니면 똑같은 이유로 다시 헤어질까요?
영화 속에 중요한 두 사람이 또 있습니다. 라쿠사 원장 하워드 박사와 직원 메리.
메리는 원장이 좋아서 고백했고 둘은 과거가 있었습니다. 하워드는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기 때문에 불륜이어서 둘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고 메리는 괴로움에 스스로 기억을 지웠었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실수를 또 저지르게 됩니다. 메리는 니체 명언을 읊었습니다.
“망각한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
사랑에 대한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망각을 선택했지만 원장 앞에서 느껴지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사랑이란 게 단순한 게 아닙니다. 잊고 싶다고 잊어지는 게 아니고 그 사람 앞에 서면 다시 무너지고 마는 게 사랑입니다. 똑같은 이유와 느낌으로 사랑에 빠지게 되나 봅니다.
미셸 공드리와 작가 찰리 카우프만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았는데 원래 시나리오에는 할머니가 된 클레멘타인이 기억을 지우기 위해 라쿠사를 찾아가는 장면이 끝이었다고 합니다. 그 엔딩으로 안 하길 잘한 듯, 영화 속 엔딩이 더 좋습니다. 할머니가 되어서 찾아가면 그 많은 시간을 망각하고 싶다는 건데 그보다 더 슬픈 엔딩이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영화 속 엔딩처럼 다 알면서도 끌리기 때문에 다시 사랑하겠다는 게 사랑을 더 잘 보여준 듯합니다.
나이가 들어보니 사랑에 대한 관념도 바뀌어갑니다. 한 번 헤어진 커플은 또다시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다른 점에 이끌려 만나는 사랑보다 비슷한 사람끼리 더 잘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서로 달라서 부족한 점이 보완되는 사랑이 더 좋은 건가 헷갈리기도 합니다.
사랑은 상대를 바꾸려고 하면 고통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서로 조율은 해야겠지만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사랑은 더 성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나이 30이 넘어서 사람이 바뀌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주연 배우들의 호연과 독창적이고 탁월한 스토리, 흠잡을 데 없는 연출과 함께 아름다운 음악으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명작입니다.
그리고 <이터널 선샤인>은 사랑과 고통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아주 잘 만든 수작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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